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53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답파천산설(踏破千山雪) …<3>

 

 인곡당 보다 먼저 온 선객 중에는 고송당(古松堂)이 있었다.


 대구 파계사(杷溪寺) 출신의 젊은 선객인데 인곡당과 쉽게 친해졌다.


 동료 대중스님네는 백암산(白岩山) 호랑이라느니 산중조실(山中祖室)이라느니 하며 매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더욱이 만공조실(萬空祖室)스님도 인곡당을 매우 반기시며,


 “한 산중의 조실로서 양이 안차더냐?”


 “큰스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한 산중의 조실로서 만족이 안 되어 다시 풀무간으로 나왔으니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가는 방장화상이 될 셈이 아니냔 말이니라.”


 인곡당은 미소로써 답을 대신한다. 만공조실도 웃음을 지으신다.


 “그렇다. 대장부는 뜻과 그릇이 커야 한다. 한 산중 아니라 천하를 준다 해도 눈을 팔아서는 안되느니라.”


 “예. 큰스님 명심하겠습니다.”

 결제 중에는 의례히 묵언(黙言)과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일관해 온 인곡당은 정진 중에 거의 입을 떼지 않았다. 젊은 친구인 고송당(古松堂)이 자꾸 말을 걸려고 했지만 인곡당은 들은 척도 않는다.

 이번 여름철에는 만공조실의 제자 중에 수제자급인 금봉당(錦峰堂) , 고봉당(高峰堂)도 함께 정진하게 되어 대중 분위기가 자목 최상급이었다.

 금봉당은 조금 마른 체격인데 깡다구 있게 정진에 열중하고 있고 고봉당은 육덕이 좋은 편인데 금봉당에 질세라 밤잠을 잊고 포단 위에서 떠나지 않는 정진파였다. 이 두 선객은 인곡당보다 다섯살 연상이지만 인곡당에게 꼬박꼬박 경어를 사용하며 존중 해 주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 선배스님들과 어울려 정진하게 되어 인곡당은 기분이 좋았다.

 선원에서 정진이 잘 될 적에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정진이 잘 안될 경우에는 시간이 더디 흐르는 법. 무슨 말인가 하면 정진이 여일(如一)하게 잘 되면 시간의 흐름을 감지(感知)하지 못하므로 어느 사이 날짜가 지나가 버린다.

 반면 정진이 잘 안될 적에는 답답함만 쌓여가서 시간이 빨리 흘러 방선죽비 치기만을 기다리게 되지만 역으로 시간은 더디 흐르는 법이다.

 정혜선원은 덕숭산(德崧山) 중허리에 자리하고 있어서 여름철에도 그리 덥지 않고 서북쪽이 산으로 막혀 있으므로 겨울철에도 추위가 덜하다. 선원으로서의 최상의 여건을 갖춘데다 걸출한 만공조실이 계시니 든든하기 이를데 없다.

 만공조실의 포용력은 소문이 난지 이미 오래다. 뿐만 아니라 조국과 민족에 대한 철저한 사랑을 갖고 있어서 일인(日人)들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31본산의 하나인 마곡사(麻谷寺) 주지로 있을 때, 본산주지회의(本山住持會議)에서 소위 사찰령(寺刹令)을 심의 통과하는 마당에서 사찰령을 적극 반대한 만공주지였다. 일인들이 강제적으로 사찰령을 통과시키기 위해 헌병대를 회의장에 배치하는 등 공포분위기가 극에 달했다.

 다른 주지들은 찬반토론에 꿀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그냥 통과시키려 하자 만공주지가 일어서서,

 “지금 이 순간 사내총독(寺內總督)이 지옥에 떨어지려 하는데 여러 대덕스님들은 어찌 말씀이 없으시오?”

 하자 일인(日人) 학무국장(學務局長)이 말하기를,

 "우리 총통각하께서 어찌 지옥에 떨어진단 말이오?“

 이 물음에 만공주지는,

 “우리 출가비구는 청정수행으로 생명을 삼는데 지금 사내총독은 비구승을 파계승으로 만들려 하고 있소. 승려가 파계하여 처자를 거느리면 청정을 잃어 지옥고를 받게 될 것인즉 사내총독인들 어찌 지옥을 면하겠소? 그러니 내 출가승으로서 사내총독을 아끼는 마음 간절하여 지옥에 떨어질 총독을 아끼는 마음 간절하여 지옥에 떨어질 총독을 위해 애석한 눈물을 지울 수가 없소이다.”

 이 청천벽력 같은 만공선사의 일할(一喝)에 학무국장의 얼굴을 창백하다 못해 사색으로 변하였고 31본산 주지들도 사색으로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생사를 뛰어넘은 만공조실의 이 대담무쌍한 발언이 전국사찰에 퍼지자 수많은 우국지사 승려들은 박수갈채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일인 경찰은 만공스님의 흠을 찾아내기 위해 수덕사 경내는 물론이요, 만공조실이 움직일 적마다 미행․감시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일경(日警)의 감시가 예전보다 덜한 편이라 한다.

 만공회상(滿空會上)은 큰스님의 덕화로 대중들의 조석공양은 그럭저럭 잘 꾸려가고 있는 셈이어서 다행하기만 하다.

 한철을 결산하는 해제일(解制日). 석달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뼈를 깎는 정진으로 일관한 선객들은 해제를 맞으면서 금족(禁足)생활에서 해방이 된다.

 석달간 지어온 공부를 재점검하는 의미에서 조실스님의 해제법문 역시 비중이 크다. 정진대중은 말할 나위 없고 전국에서 조실스님의 해제법문을 듣기 위해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가 운집한다.

 그 신도들 중에서 대중공양을 올린 분도 있고 공양미를 바친 신도들도 있기 마련이다. 내가 올린 공양구(供養具)를 잡수시고 얼마나 공부를 지으셨을까? 하고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대중스님네에게 던지는 신도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해제날은 사부대중으로 마당에까지 꽉 차서 한결 들뜬 기분이 되어진다.

 조실스님이 법상에 오르시고 병법(兵法)스님의 청법게(請法偈)에 맞춰 전 대중이 삼배를 올렸다. 이어 죽비소리에 맞춰 입정(入定)이 있었고 잠시 뒤 출정(出定)의 죽비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틀렸소이다.”

 깐깐하면서도 워낙 우렁찬 음성이어서 대중들은 깜짝 놀라며 외친 사람 쪽으로 시선을 집중한다.

 틀렸다는 외침은 다름 아닌 인곡당(仁谷堂)이 내지른 것이었다.

 이에 조실스님은 쥐고 있던 주장자를 법상에 내려놓고 말없이 법좌에서 내려오시는 것이었다.

 대중들은 모두들 의아한 감정을 스스로 삭여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법문을 사직하려는 찰라 착(錯)하고 한마디 던지니 조실스님은 그만 하좌(下座)하고 말았으니 과연 그 깊은 뜻을 무어라고 사족(蛇足)을 붙일 것인가?

 헌데 염화실(拈花室)로 돌아가서 가사·장삼을 벗으신 조실스님이 큰방으로 나오셔서는 포행을 하시는데 그 표정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안색이었다. 좌중에 앉아 있던 고봉당(古峰堂)이 조실스님에게 한마디 던진다.

 “조실스님 점심공양을 두그릇 드셔야 겠습니다.”

 큰방을 빙 돌던 걸음을 멈추고 고봉당을 굽어 보시며,

 “너는 몇그릇 들꺼냐?”

 “저야 원래 양이 커서 언제나 과반(過飯)을 하지 않습니까?”

 조실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다시 포행을 계속하신다.

 이때 금봉당(錦峰堂)이 나선다.

 “틀렸소이다 하는 걸 듣고 꼼짝없이 내려오서 놓구서 공양은 무슨 두그릇이나 드신다는 게야.”

 고봉당을 향한 독설(毒舌)이었다.

 “어찌 금봉당이 가만있나 했더니 바야흐로 시작이군 그래.”

 “그래 시작일세.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 가만있을 위인이 어디 있겠나?”

 “그럼 금봉당이 한번 일러보소.”

 “삼두육비(三頭六譬) 일세.”

 고봉당과 금봉당은 만공조실이 인정하는 본분납자(本分衲子)에 속한다. 만공문하(萬公門下)에는 기라성 같은 공부인(工夫人)이 즐비하기로 일찍이 소문이 나있다. 그 중에서 맏제자 보월(寶月)선사는 벌써부터 한 산중의 조실로 있고 고봉, 금봉 외에도 공부 잘하는 납자가 수두룩하여 가위 사자굴 속에 다른 짐승이 없다는 말씀이 실감이 난다.

 인곡당(仁谷堂)은 조실스님과 두 제자의 법거량(法擧揚)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입은 일체 열지 않았다.

 함부로 혀를 놀리게 되면 다치기 쉬운 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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