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마지막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시적(示寂)…<8>

큰스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시겠노라고 말씀하신 날짜와 시각은 정확히 서기 1961년 음력 7월 14일 오전 8시반 경이었다. 그러나 상좌들이 기왕이면 내일 가시지요 하고 간청하자 스님은 미소를 띄우시며 나직이 이르시기를,

 

“그러면 생각해 보지.”

 

하시고 이내 선정에 드신다. 시적(示寂)할 것을 미리 알으시고 가겠노라고 선언하신 것을 제자들이 만류하자 그럼 생각해 보겠노라 하신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생사(生死)에 자재(自在)한 달도인(達道人)이 아니고서는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인류 역사상 생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사람은 과연 몇분이나 되는가? 불교계의 고승 대덕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효(元曉)스님은 육처시멸(六處示滅)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여섯군데서 동시에 열반에 드셨단다. 열반에 드시자 이를 각 사찰에 알리려고 부고장을 들고 가던 스님들이 도중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어디를 그리 바삐 가시오’ 하니 우리 절에서 원효큰스님이 어제 열반에 드셨다고 하자 상대방 스님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제 우리 절에서 열반에 드셨는데요.”

 

“뭐라구요?…”

 

이렇게 시적(示寂)하신 곳이 무려 여섯 군데나 되었던 것이다.

 

 

 

마조(馬祖) 문하의 등운봉(鄧雲峰)스님은 제자들에게 선사(先師)스님들의 열반하신 모습에 대해 물으니 제자들은 각기 듣고 목격한 대로 여쭈었다.

 

어떤 스님은 앉아서 가셨고 어떤 스님은 부처님 처럼 우협(右脇)으로 누우신채 가셨고 방거사(龐居士)는 친구인 그 고을 태수(太守)의 무릎을 베고 가셨고 아들은 밭에서 밭일 하다가 아버지가 가셨다는 얘길 들은 즉시 괭이에 몸을 의지한채 그대로 열반에 들었다는 등 갖가지 열반상(涅槃相)을 말씀 드렸더니 운봉선사는,

 

“허! 모두가 그런 모습으로 가셨구나. 그러나 나는 그 분네와는 다른 모습으로 가겠노라.”

 

하고 말씀하시고는 가사 장삼을 입으신채 거꾸로 물구나무 서기로 그만 가셨던 것이다. 헌데 가사 장삼은 서서 입으신 모습 그대로였으며 제자들이 스승님을 부축하여 누우시게 하려 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는 큰스님의 법력이 대단했음을 의미한다.

 

 

 

또 육신등공(肉身騰空)하신 예도 허다하다. 신라 성덕대왕(聖德大王)의 형님이신 보즐태자는 오대산으로 들어가 진여원(眞如院)을 짓고 수도에 전념 하였는데 때로는 울진(蔚津) 성류굴(聖留窟)에 날아와서 살기도 하더니 임종에 이르러 몸을 날려 서방세계로 떠나셨다.

 

또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발징화상(發徵和尙)은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열어 많은 대중과 함께 만일(萬日) 동안 염불하더니 회향일에 육신을 공중에 날려 그대로 서방세계[극락]로 떠나셨던 것이다.

 

 

 

그럼 생각해 보겠노라 하신 후 큰스님의 용태가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안색이 창백했던 것이 핏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평상시에 가깝도록 좋아지시는 것이었다.

 

스님의 용태를 꾸준히 지켜온 혜암은 그제야 한시름 놓는다. 스님께서 오늘 당장 가시겠다고 하신 것을 내일로 미루신 것을 굳게 믿는 그였다.

 

큰스님이 열반에 드시려다 내일로 미뤘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온 산중에 퍼져 나갔다. 오후에는 아랫동리에까지 소문이 나서 해질녘에 십여명의 불자들이 큰절로 올라왔다. 신도들은 관음전 큰방에 모였는데 산중대중들도 저녁예불 마치고 큰방에 운집하였다.

 

큰방에 운집한 사부대중은 큰스님 방에서 무슨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모두들 선정(禪定)에 들어 있었다. 젊은스님들 몇이서 큰스님 방문 앞에 이르러 방안에 들리도록 여쭌다.

 

“큰방에 대중이 운집하였는데 미타정근(彌陀精勤) 할까요?”

 

혜암스님이 큰스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 여쭙기를,

 

“스님, 대중이 큰방에 운집하였는데 함께 미타정근 할까 합니다.”

 

목석처럼 우뚝 앉아 계신 스님께서 비로소 한 말씀 하신다.

 

“내 염불은 내가 하고 가니 걱정말고 제각기 자기 공부나 하도록 하지.”

 

큰스님이 다시 자리에 누우신 것은 자정이 훨씬 넘어서였다. 스님 곁에 좌정하고 있는 제자들도 모두 긴장을 풀고 벽을 기대고 눈을 붙이는 이도 있고 그냥 앉아 있는 이도 있었다.

 

이윽고 새벽예불을 알리는 도량석 목탁이 온 도량을 골고루 돌며 울린다. 이어 소종(小鐘)소리와 함께 장엄염불이 정적을 담고 아스라히 들려온다. 큰스님은 목탁이 울리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평상시 대로 우뚝 앉으신다. 아마 이는 평생을 두고 익혀온 정진력의 발로이리라.

 

몇시간이 지나자 창문이 자못 환해지기 시작하더니 간간이 산새소리도 들려온다. 시자 동진(東眞)이 데운 물에 수건을 빨아서 가져온다. 혜암이 수건을 받아 스님 얼굴이며 두 손을 씻겨 드린다. 후원에서는 해제(解制)에다 가사불사(袈娑佛事) 회향 준비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전국에서 천여명 신도들이 올거고 산내 암자에서도 대중스님들이 운집할 것이어서 공양 준비에만 본방 젊은 스님들이 어제부터 열다섯명이나 차출되어 왔다. 하룻밤이 이렇게 지나는데 길고도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은 착각을 느낀 것은 비단 상좌들만은 아니었으리라.

 

큰스님은 날이 밝자 비로소 냉수를 찾으신다. 너댓모금 드신 뒤 상좌들을 돌아보시며 입을 여신다.

 

“자네들 정진 잘하게. 세월이 우리를 위해 잠시도 멈춰주지 않네.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는 말씀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닐세. 자주 깎은 머리 만져보며 해태심(懈怠心)을 경계하고 먹물옷 값을 시시(時時)로 헤아리고 점검하게나.”

 

상좌들은 모두들 무릎을 꿇고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인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아침 8시 20분경, 큰스님은 상좌들을 둘러보시고 나직이 이르신다.

 

“일심(一心)이 불생(不生)하면 만법(萬法)이 무구(無咎)니라.”

 

이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었다. 한 마음도 나지 않으면 일만법이 허물될 것이 없다. 마음을 내고 보니 갖가지 시시비비(是是非非)가 따라 인다. 상좌들은 좌탈(坐脫)하신 스승님의 모습을 목격한 순간 눈물도 나지 않았다. 생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스승님이 하늘보다 더 높아 보였다.

 

혜암은 대종(大鍾)을 울리도록 지시한다. 이윽고 대범종의 우람한 소리가 가야산을 압도하듯 울린다. 대범종이 열번쯤 울렸을 무렵 주지 자운(慈雲)스님이 가사 장삼을 수하고 달려와서 큰스님에게 오체투지하여 삼배를 드리고는,

 

“사형님, 약속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를 더 머무신 약속. 큰스님은 이 약속을 거뜬히 지키신 것이다.

 

사흘 후 다비식(茶毘式)에는 전국에서 수천명의 사부대중이 모였고 만사(挽詞)도 수십통 날아왔다.

 

큰스님은 슬하에 혜암(慧菴) 혜귀(慧歸) 수진(守眞) 법행(法行)운문(雲門) 묵산(默山) 법경(法鏡) 석주(石柱)·포공(飽空) 서암(瑞庵) 봉주(奉珠) 혜적(慧寂) 봉우(鳳愚) 혜관(慧觀) 법종(法宗) 운성(雲性) 동진(東眞) 등의 은법자(恩法資)를 두셨다. 또 손좌는 큰스님이 열반에 드신 뒤 자꾸 불어서 어느덧 50여명에 이르렀다.

 

큰스님이 입적(入寂)하신 소식을 듣고 당시 종정(宗正)으로 계신 사형(師兄) 동산(東山)스님이 조송(弔頌) 보내셨다.

麟谷禪師何處去<EM>漢陽城外水東流

 

인곡선사는 어디로 가셨는고?

한양성 밖 물은 동쪽으로 흐르도다.

통도사의 구하노화상(九河老和尙)은 이렇게 읊으셨다.

 

麟雲碧海秋聲起

谷月蒼空瑞影寒

昌法眞緣何處去

洙痕無障亦無門

辛丑 7月15日 示寂 靈鷲山 九河

 

기린 구름 푸른 바다에 가을소리 이니

골짜기 달 푸른 허공에 상서로운 그림자 차가와라

법을 드날린 참다운 인연은 어디로 가시는고?

물의 흔적 장애 없고 또한 문도 없도다.


신축년 7월 15일 시적하시니 영축산 구하는 삼가 드리도다

설봉(雪峰)스님은 큰스님의 절친한 도반이다. 한 말씀이 없을 수 없다.

 

麟谷禪師 示寂日

師之出世

百鳥啣花

師之去世

千江無月

百千形態浸交涉

無限淸風付與誰

 

雪峰鶴夢

 

인곡선사 시적일에 부치다.

스님이 세상에 오심은 뭇새가 꽃을 물고 옴이요

스님이 세상을 떠나심은 천강에 달이 없음이라

백천가지 형태로도 어찌할 수 없나니

무한한 맑은 바람 뉘에게 부촉하리.

설봉학몽은 삼가 쓰다.

 

통도사 경봉(鏡峰)스님도 큰스님의 가까운 도반이다. 붓을 당겨 쓰기를,

 

先師之入寂兮 大地平沈 虛空分碎 元來寂滅是何旨 佛祖不知無染源 當恁靡麻時節 以雲山海月之情 告之片話

伽倻山兮 樹葉飄飄 紅流洞兮 溪水冷冷碧空兮 秋風蕭蕭 長天兮 白雲片片 向誰說 向誰說

於在上足

法燈傳之慧菴

定水傳之一龜

谷風雲雨散虛空

月現千江水面中

 

萬岳高低依舊碧爲師香熱古途通

是日 靈鷲山三笑窟 鏡峰 焚香

 

선사의 입적이여 대지가 가라앉고 허공이 부서짐이네 원래로 적멸함이란 이 무슨 뜻인가 부처와 조사도 물듦이 없는 근원을 몰랐네. 이러한 시절을 당하여 구름과 산, 바다와 달 같은 정으로 몇 말씀을 아룁니다.

가야산이여 나무잎이 나부끼고 홍류동이여 시냇물이 차갑네 푸른 하늘이여 가을바람이 소슬하고 긴 하늘이여 흰구름이 드문드문 누굴 향해 말할까 누굴 향해 말할까?

상족이 있는 곳에

법등은 혜암에게 전하였고

정수는 일구에게 전하였네

골 바람에 구름과 비는 허공에 흩어지고

일천강 물 위로 달이 나타나도다

높고 낮은 왼 산은 예전처럼 푸르른데

큰스님께 향 사루니 옛 길이 확 트이네

이날, 영축산 삼소굴의 경봉은 향 사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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