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94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시적(示寂)…<7>

큰스님은 불교의 이상(理想)인 대자비 대자유<0A24D>대평등을 원성(圓成)한 경지에 몰입(沒入)<0A24D>안주(安住)한 상태에서 대적삼매(大寂三昧)의 문전에 서 계신다.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였으니 대자유인(大自由人)이요 물아(物我)의 이원적(二元的)인 생각이 끊겼으니 대평등의 경지에 안주하고 있으며 평등한 가운데 유정(有情)<0A24D>무정등(無情等)을 긍정하고 섭수(攝受)하여 모두를 내몸처럼 달관하고 있으니 대자비를 이룬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큰스님은 너와 나라는 자타(自他)의 상(相)을 넘어선지 오래였으니 이제는 이 몸마저도 안중(眼中)에 없었다. 잠시 빌려 60여년을 부려왔지만 기실 영원히 내 것은 아니므로 적당한 시기에 환귀본처(還歸本處)하는 것이 순서인 것이다.<BOLD=*>

 

돌려보낼 시기, 그 시기를 정확히 포착하기란 매우 어렵다. 대자유인이 아니고서는 그 시기를 붙잡기도 어렵고 선선히 돌려 보내기도 사실 어려운 것이다. 큰스님은 그 시기를 환히 보고 계신다. 아니 그 시기가 닥쳐 왔음을 감지하고 계신다. 그래서 단식을 하려 하셨는데 혜암이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좀 늦추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마냥 늦출 수도 없는 법. 선도(仙道)에서 장생술(長生術)을 익힌 대가(大家)가 비록 수백세 수천세를 장생한다 해도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환신(幻身)의 수명이사 짧은 것이 원칙이요 당연한 것이지만 대자유인(大自由人)은 환신에 얽매임이 없이 영원(永遠)에로 승화(昇華)한다.<BOLD=*>

 

생사를 초월하고 보면 영원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이 영원히 사는 세계를 아미타경에서는 극락세계(極樂世界)라 했고 화엄경에서는 화장세계(華藏世界)라 했지만 일체 불세계(佛世界)는 모두 영원히 사는 세계인 것이다. 어떤 선지식은 임종게를 읊기를,<BOLD=*>

 

 

 

臨行擧目 十方碧落

 

無中有路 是爲極樂

 

 

 

내 가려면서 눈을 드니

 

시방세계가 깨끗하고나

 

없는 가운데 길이 있으니

 

이를 극락이라 하나니…

 

 

 

유마경(維摩經)에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온 누리가 청정하다’ 하였다. 그래서 떠나가면서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온 누리가 청정하다고 설파하신 것이다.

 

극락으로 가는 길, 즉 영원에로 가는 길은 범부 중생으로서는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범부 중생에게는 극락으로 가는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없는 가운데 길이 있으니’ 하고 설파 하신 것이요, 그 길은 바로 극락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큰스님은 그 길을 환히 알고 계신다.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한 그 때 큰스님의 손에는 영원에로 가는 차표가 이미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차표를 언제 사용하느냐의 과제에 직면한 큰스님은 결행할 시기를 살피고 계신지 몇달이나 되었건만 주위 환경 때문에 잠시 멈추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7월에 접어들면서 더 멈출 필요가 없음을 짐작하시고 초사흘 부터 단식으로 들어갔다. 시자더러 죽공양 대신 냉수만을 가져 오도록 지시하셨다.

 

“꼭이 단식을 하셔야 합니까?”

 

시자의 걱정스런 물음에,

 

“단식하면 속이 편해진다.”

 

이 한 말씀으로 시자의 입을 봉하셨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가 되자 단식하신다는 소문이 산내에 좌악 퍼지니 주지스님이 달려왔다.

 

“사형님 왜 단식하십니까? 죽공양이 싫으십니까?”

 

“아니여 속이 좀 불편했거든.”

 

“속이 불편하면 약을 드셔야지요.”

 

“단식하면 속이 편해지는걸 약은 무슨약이여?”

 

이제는 누가 뭐래도 단식을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을 굳히신 것이다. 기실 단식하면 속이 편할 뿐만 아니라 화장실 갈 일도 줄어들고 정신도 훨씬 맑아지며 몸에 힘도 생긴다. 혜암은 스님이 단식을 하시는 사유를 잘 알고 있다. 화신을 벗기 위한 방편임을 말이다. 그래서 스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포공수좌도 낌새를 알아차리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스님 곁에서 보낸다.

 

단식(斷食)에 들어간 뒤 큰스님과 대중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큰스님은 단식전 보다 몸이 더 가뿐해져서 심신이 편안해 졌고 대중들은 마치 큰 일이나 닥칠 것처럼 불안해 하였다. 곁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는 혜암은 자주 고개를 기웃거린다. 그 전보다 더 편안해진듯 보이는 큰스님이 정상인지 불안해 하는 대중의 눈이 정상인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무튼 냉수만 드시는 큰스님은 자주 일어나서 척량골을 꼿꼿이 세우고 선정삼매에 몰입하여 시공을 잊으신다. 방안에는 늘 정적만 흐른다 마치 방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시자는 시자방으로 가고 큰스님 곁에는 혜암만이 가부좌로 역시 선정에 들어 있을 뿐이다. 간혹 포공이 선원에서 내려왔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그도 혜암 곁에 앉아서 화두를 붙잡는다.

 

이러구러 열이틀이 지난 뒤 문도들이 여섯명이나 모였다. 멀리서 스님을 뵈오러 온 것이다. 스님은 꼿꼿이 앉아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신다.

 

“증도가(證道歌)에 이런 송구(頌句)가 있지.

 

不可毁  不可讚 體若虛空勿涯岸

 

不離當處常湛然 覓則知君不可見

 

이 송구를 한번 새겨보게”

 

스님의 말씀에 모두들 묵묵부답이었다.

 

“공부를 제대로 지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한건데 어찌 못새기는가?”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요.”

 

포공수좌가 여쭌다. 잠시 침묵한 후 스님께서 이르신다.

 

“내가 새길 터이니 잘 들어보라구.

 

 

 

가히 헐 수 없고 칭찬할 수 없이

 

체가 허공 같아 끝이 없도다

 

당처를 여의잖고 늘 맑고 고요하나니

 

찾으려면 그대는 알으리 가히 볼 수 없는 줄을”

 

스님께서 새기시자 포공이 여쭌다.

 

“맨 끝부분이 어렵구만요.”

 

“내 학인시절에 이 증도가(證道歌)를 만나 평생을 두고 외우고 또 외우며 음미해 오고 있지만 늘 새로운 맛이 나거든. 어째서 찾으려면 가히 볼 수 없다고 했는고? 자네들 일러 봐.”

 

이 때 상좌 법종(法宗)이 여쭌다.

 

“스님, 청담(靑潭)스님께서 ‘이 몸을 버리시면 하처(何處)로 가십니까?’하고 물으십니다.”

 

“……”

 

큰스님은 양구(良久)하신다. 양구가 바로 답인 것이다.

 

“오늘이 며칠인가?”

 

“칠월열나흘 입니다.”

 

“나 오늘 갈라네.”

 

“예? 스님…”

 

 

 

夢幻空華 六十七年

 

仁谷煙沒 流水連天

 

 

 

꿈과 허깨비와 허공의 꽃 같은 67년의 내 생애여

 

내 이제 연기처럼 가노니 흐르는 물 하늘에 연이었네.

 

 

 

스님께서 임종게(臨終偈)를 읊으시자 안은 갑자기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포공이 여쭌다.

 

“내일이 해제일(解制日)이고 백중날에다 아미타재일(阿彌陀齋日)이니 기왕이면 내일 좋은날 가시지요.”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인데 도닦는 사람이 좋고 나쁜 날이 어디 있느냐?”

 

“스님, 스님의 경계는 그러하지만 내일이 또한 가사불사(架裟佛事) 회향일이니 스님께서 오늘 가신다면 사중에서는 가사불사 회향 준비에다 해제 준비도 해야 되고 스님의 장례 준비도 해야 되니 너무나 바쁘게 됩니다. 그러니 기왕이면 내일 가시는게 좋겠습니다.”

 

상좌의 말에 스님은 미소를 머금으신다. 혜암도 한 말씀 드린다.

 

“스님 그렇게 하시지요. 대중스님네는 스님께서 해제법문(解制法門)해주시길 것으로 믿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응 그래? 생각해 봄세”

 

큰스님의 안색이 갑자기 환해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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