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93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시적(示寂)…<6>

유월(六月)의 계절을 석류알이 익어가는 계절이라 하여 ‘유월(榴月)’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멋스러운 예지인가! 석류알은 유월염천(六月炎天)에 그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알알이 익어간다. 강렬한 양(陽)의 기운을 제몸에 흠뻑 축적하고서 아무나 접근하지 말라고 신 기운을 내뿜는다.

 

그러나 그 신[酢酸] 석류알에는 양(陽)의 기운이 가득차 있어서 약용(藥用)으로 요긴히 쓰인다. 그 유월염천에 큰스님은 단식(斷食)을 하겠노라고 시자(侍者)한테 이르신다.

 

“단식을 왜 하시렵니까? 여지껏 끼니마다 죽만 드셨는데 그나마 죽 마저 안드시면 몸을 지탱하기 어려워 집니다.”

 

“단식하면 기운이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들 하더구나. 냉수를 마시면 약 백일동안은 생명을 지탱할 수 있다는구나.”

 

“그것은 건강한 사람일 경우 그렇다는 것이지요. 스님께서는 단 사흘만 단식하셔도 큰일납니다.”

 

“……”

 

시자는 슬며시 일어나 선원으로 달려간다. 혜암사형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혜암은 이내 스님에게로 왔다.

 

“스님 단식 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그랬네. 단식하면 몸이 뜬구름 같이 편안해 지거든.”

 

“그렇지요. 몸이 가벼워진답니다.”

 

“그래서 나도 단식 하려는 걸세.”

 

“스님 지금은 유월염천이라 좋지 않습니다. 더위가 좀 수그러지면 하시지요. 더울 적에는 몸 안의 수분이 쉽게 달아나므로 노쇠한 분은 도리어 손해를 봅니다. 삼복 더위가 지난 뒤 초가을에 단식하시면 심신이 경쾌해지실 것입니다.”

 

“……”

 

“스님 알아들으셨지요.”

 

“응 그래.”

 

혜암은 우회전술을 구사했다. 무조건 ‘단식하면 안됩니다’하고 우기면 스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 되어 도리어 역효과를 낼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가을에 들어서서 서늘해진 다음에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고 어린아이 달래듯 여쭌 것이다. 스님께서 즉흥적으로 나 단식 할란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혜암은 간파하고서 우회적으로 여쭌 것이었다.

 

그런데 큰스님은 혜암의 진언에 단박에 마음을 돌리셨다. 서두를 것 없이 조금 서늘해지면 단식을 하기로 생각을 바꾸신 것이다. 그래서 시자가 드리는 죽공양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비록 적은 양이긴 하지만 꼬박꼬박 드시는 것이었다. 하루는 포공(飽空)이 스님을 뵈러 왔다.

 

“스님 저 왔습니다.”

 

포공은 행동거지가 직선적이어서 언뜻 보면 선머슴아 같다. 그래서 떠들썩한 것이 특징이다. 그 전에는 스님께서,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을 안상(安詳)히 하거라.”

 

노상 이렇게 타일러 왔다.

 

“정진 중에 포단을 이탈하는 것은 금물이야.”

 

“방선 중이라 잠시 뵈러 왔습니다요.”

 

포공은 응석을 부린다.

 

“공부는 잘 되어 가는가?”

 

“화두 붙잡기가 쉽지 않구만요.”

 

“그 전에 법화경 외울 적처럼 마음을 쏟게. 그리하면 화두도 순일(純一)히 들어질 것이네.”

 

“예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노력하고 있습니다.”

 

“……”

 

“……”

 

“법화경은 요즘도 외고 있는가?”

 

“몇번이나 물으십니까? 외고 있습니다.”

 

“그때 그걸 물었지?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 십겁(十劫)을 좌도량(坐道場) 하여도 불법(佛法)이 현전(現前)하지 않은 의지(意旨)가 무엇이냐고 말일세.”

 

“예, 그랬지요.”

 

“지금은?”

 

“예?… 아! 예…”

 

“분명히 대답해 봐, 이 부처야.”

 

“예? 절더러 부처라고요? 으하하하…”

 

“불법은 명백한 것, 안개 속처럼 불분명(不分明)한 것은 아직 덜된 것이지.”

 

“스님 지금 다 알아가고 있습니다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요.”

 

“이 화상 보게, 일조활연(一朝豁然)하면 환득본심(還得本心)이야.”

 

“스님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포공은 큰절을 올리고 달아나듯 문을 열고 나간다. 큰스님은 독백하듯 한 말씀 더 하신다.

 

“그 사람 법화경 헛 외웠군.”

 

며칠이 지난 뒤 혜암이 왔다.

 

“스님 어떠십니까?”

 

“그저 그만하네.”

 

“날씨가 선선해지면 말끔히 좋아지실 것입니다.”

 

“노환(老患)은 계절에 관계 없이 노환인게야.”

 

“아닙니다. 노환도 나름이지만 아무래도 덥고 추운 때는 병환이 오래 가고요, 따스하고 서늘한 계절에는 호전(好轉)된다고 합니다.”

 

“……”

 

큰스님은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어서 평소에도 굳이 대답대신 침묵을 하신다. 맘속으로 긍정하신다고나 할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포공(飽空)이 아직 멀었어.”

 

“그렇던가요?”

 

“내가 예전에 대통지승불이 십겁을 도량에 앉아서도 불법이 현전하지 않은 까닭을 물었지.”

 

“그런데요?”

 

“어째서 현전하지 않았느냐구 물었는데 명쾌히 대답을 못하데 그려.”

 

“아! 예.”

 

“혜암.”

 

“예?”

 

“자네가 일러 봐.”

 

“뭐를 말씀입니까?”

 

“어째서 현전하지 않았을꼬?”

 

“실로 현전하지 않지요.”

 

“왜?”

 

“불부도불(佛不度佛) 아닙니까?”

 

“응?”

 

“만일 현전하였다면 대통지승불이 아니지요.”

 

“음-”

 

큰스님은 감고 계셨던 눈을 떠서 혜암을 응시 하신다.

 

“소견이 조금 트였군.”

 

혼잣말처럼 하신다.

 

“뒷날 자네 사제(師弟)들을 잘 돌보게. 공부 않으면 진취가 없어. 하나도 정진, 둘도 정진, 셋 정진이야.”

 

“임제(臨濟)선사가 장차 시적(示寂)하시려면서 시자(侍者) 삼성혜연(三聖慧然)에게 이르시기를, ‘내 시적한 뒤 학인들이 참문(參問)해 오면 어떻게 보이겠는가?’하니 삼성이 문득 할(喝)을 했지. 그랬더니 임제선사가 이르시길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너에 이르러 멸실(滅失)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하셨네. 선사의 답하신 의지(意旨)가 무엇인고?”

 

이에 혜암은 우뢰 같은 음성으로 “할(喝)” 하고 일할(一喝)을 했다.

 

“……”

 

한동안 잠자코 계시던 큰스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좌하시고는 나직이 입을 여신다.

 

“옳기는 올네마는 여래의 정법안장은 벌써 무너져 버렸네. 좀 더 노력하게. 바짝 고삐를 잡아당기게나.”

 

“예 가르침 주셔서 감사 하옵니다.”

 

“요즘은 신법자(信法者)가 없어. 불법(佛法)의 오묘난사의(奧妙難思議)한 도리를 믿는 이가 적단 말이지.”

 

“다 정진력이 부족한 탓이지요.”

 

“아무렴 그렇고 말고.”

 

“스님 저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향해 온 힘을 쏟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요.”

 

“그래 그래. 그래야지.”

 

혜암이 물러간 뒤에도 큰스님은 그대로 꼿꼿이 앉아 계셨다. 마치 자신의 공부를 스스로 시험이나 해보려는 듯 말뚝처럼 우뚝 앉아 계셨다. 불법의 최고 이상(最高 理想)을 말하란다면 무어라 설명함이 가장 옳은 답일까? 어느 누구는 대자비(大慈悲) 대자유(大自由) 대평등(大平等)을 든다. 생사의 굴레를 벗은 것을 대자유라 하고 일체중생을 적자(赤子)처럼 어여삐 여기는 것을 대자비라 하며 일체중생을 고루 동등하게 보는 것을 대평등이라 한다면 잘못 본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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