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91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시적(示寂)…<4>

반산림(半山林)날에도 인곡큰스님은 시봉에게 업혀 대적광전으로 가셨다. 습진으로 인해 행보가 불편하심을 익히 알고 있는 대중은 언짢아 하기 보다 속히 쾌차하시기를 기원하면서 큰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법당에 가득 운집하여 숨을 죽인채 기다리고 있었다. 큰스님은 주장자를 의지하여 꼿꼿이 앉으셔서 이윽고 법문을 시작하신다.

 

守護淸淨戒하야 修行廣大因하라

精進不退轉하면 光明照世間하리라

청정한 계행 잘 지켜

넓고 큰 인연을 닦아라

정진함에서 퇴전치 않으면

광명이 세간을 비추리라

 

먼저 게송을 읊으시고 잠시 양구(良久)하신 다음 말씀을 이으신다.

 

“육조(六祖)스님이 이르시기를,

心地無非自性戒요

心地無亂自性定이며

心地無痴自性慧니라

 

마음자리 그릇됨 없음이 자성의 계요

마음자리 어지러움 없음이 자성의 정이며

마음자리 어리석음 없음이 자성의 혜니라

 

대중이여 마음자리가 그릇됨이 없고 어지러움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곧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라 하셨느니라. 계(戒)는 마음자리가 청정함에서 생하고 정(定)은 청정한 계(戒)에서 생하며 혜(慧)는 곧 정(定)에서 나느니라. 그래서 청정한 계를 잘 지키라 함이니 청정한 계행을 잘 지켜 넓고 큰 인연을 닦으라 하였느니라. 대중이여 넓고 큰 인연[廣大因緣] 이란 무엇인가? 위로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코져 함이니라. 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제중생(下濟衆生)은 우리가 세상인연을 버리고 출가위승(出家爲僧)한 본의(本意)이자 덕목(德目)이니라. 이 본의(本意)를 성취하려면 청정한 계행을 잘 지켜 넓고 큰 인연을 부지런히 닦을지니 이러히 정진함에서 물러서지 않고 꾸준히 닦아간다면 당래에 부처가 되어 광명이 온 누리를 비추게 될 것이니라. 대중이여 부처[佛陀]란 무엇인가? 우리가 자신이 본래 부처 임을 잊고 무량겁을 밖으로만 헤매이다가 자신이 부처 임을 깨닫고 자기 자성(自性)을 회복한 참사람[眞人]이니라. 대중이여 부처란 곧 자성(自性)을 회복한 참사람[眞人]이니라. 임제(臨濟)선사 이르시되, ‘마음 청정이 부처요 마음 광명이 법이요 청정과 광명에 걸림 없음이 승(僧)이니라’ 하셨나니 청정과 광명을 체달(體達)한 승(僧)이 곧 참사람[眞人]이니라.

 

兀兀不修善하고 騰騰不造惡하라

寂寂斷見聞하야 蕩蕩心無看이어다

 

우뚝 앉아 선도 닦지 말고

등등히 하여 악도 짓지 마라

고요하고 고요히 견문을 끊어서

탕탕히 마음에 집착을 없앨지어다.

 

대중이여! 항상 깎은 머리를 만져보고 내가 입은 먹물옷을 돌아보면서 중노릇을 잘 하거라. 지옥의 고통은 오히려 약과요 가사(袈裟) 아래에서 사람몸 잃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요 형벌이니라. 내 이제 광장설(廣長舌)을 한다 해도 요지(要旨)는 이것 뿐이니라”

 

여기까지 말씀 하시고 주장자로 법상을 탁하고 한차례 울리신 다음 법상에서 내려 오셨다. 이 반산림 법문이 큰스님의 마지막 법문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반산림 법문을 들은 대중들은 소견이 각각 달랐다.

 

젊은층 수좌들은 수군거리기를,

 

“큰스님이 바깥 출입을 않으셔서 혹시 가실 때가 되셨는가 했더니 아직은 멀으셨더구만.”

 

“그러게 말이여, 법문 하시는 음성에 아직도 힘이 있으시지 않던가! 아직은 10년도 더 사실걸세.”

 

“임종(臨終)에 가까워진 노스님을 여러분 지켜봤는데 가실 때가 되니 말씀이 조리가 없이 횡설수설 하시더구만.”

 

“말씀에도 힘이 없으시구.”

 

“소위 맥빠진 말씀이다 이거지?”

 

“아무렴, 바로 그거야.”

 

한편 50대 이상의 노년층 스님들은,

 

“인곡큰스님은 백년에 한사람 날까 말까 하는 숨은 도인이심이 분명해요. 저렇게 투병생활 하시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성성(惺惺) 하시니 말씀이예요.”

 

“그러게 말이요. 발의 습진만 아니면 지금도 대장경각(大藏經閣) 기도에 빠지지 않고 참예 하실게요.”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은 바로 큰스님을 두고 생겨난 말인 것 같소이다.”

 

대중이 큰스님에게 병문안을 않는 것은 큰스님에게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으려는 뜻이지만 큰스님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반산림 법문을 듣고서는 노소대중이 모두 걱정하는 마음을 덜 갖게 되었다.

 

평생을 두고 단단하고 야무진 체구였는지라 어지간히 병석에 누워 지내도 아프신 티가 안나는 큰스님이다. 솔잎을 많이 잡수셔서 안색이 약간 검으신 것이 특색인데 그 검은 빛이 오히려 더 강건해 보이는 것도 큰스님이 지니신 장점이다. 솔잎을 복용하게된 내력은 큰스님의 외숙이신 만암(曼庵)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암(曼庵)스님은 타고난 체질이 너무도 약했다. 10여세 때 자기 키만큼의 감나무에 오르면 사지가 덜덜 떨리고 천지가 빙빙 돌아서 정신이 아득했다고 만암스님은 아랫사람들 한테 자주 술회 하시곤 했다. 그만큼 약질에다 심약(心弱)한 소년기(少年期)와 청년기(靑年期)를 보낸 만암스님이 30세 무렵 해인사(海印寺)의 강주(講主)로 부임하게 되었다.

 

서른두살 때의 일이다. 한 객승이 강주실에 들르셨는데 50은 넘어 보이는 수행승 다운 풍모를 지니셨다.

 

“강주스님은 어이 그리 약질(弱質)이시오?”

 

“타고난 체질이 원래 이 모양입니다.”

 

“돈 안들고 건강해지는 비법이 있는데 한번 시험해 보겠소?”

 

“예, 하교(下敎)해 주십시요.”

 

그 객승은 솔잎을 복용하고 들깨를 장복(長服)하라고 일러주었다. 솔잎은 늦은 봄에서 이른 가을까지의 여섯달은 솔잎을 따다가 칼로 가늘게 썰어 식후에 복용하고 나머지 여섯달은 솔잎을 음건(陰乾)하여 빻아서 가루내어 복용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로부터 만암스님은 평생을 두고 솔잎과 들깨를 장복(長服)했는데 몸이 다른사람보다 더 튼튼해졌다.

 

인곡큰스님이 14세에 백양사 강원에 방부를 드린 직후, 바로 강주이신 만암스님의 시봉을 맡으면서부터 자신도 솔잎과 들깨를 복용하게 되었으며 평생을 두고 복용한 결과 몸도 튼튼하고 기운도 훨씬 세어졌던 것이다. 헌데 솔잎을 복용하고 보니 안색이 다른 사람에 비해 검은 것은 청엽(靑葉)을 복용하면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이쩔 수 없는 일이다. 헌데 금년 봄에 해인사로 들어오신 이후에는 솔잎을 찾지 않으셨다. 아랫사람들 한테 솔잎을 따오라는 것이 싫으셨던 것이다. 어쩌다가 시자 등에 업혀 해우소를 가게끔 몸뚱이가 망가졌는지 참으로 부끄럽고 기막힌 일이다.

 

성은시자(性垠侍者)가 아직 군대에 나가기 전 큰스님은 시자의 등에 업혀 해우소에 가셨다. 해우소 밖에 대기하고 있던 시자가 강원(講院)에 있는 도반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니 둘이 함께 사라졌다. 해우소에서 볼 일을 끝내신 큰스님은 그대로 선정에 들어 시자를 기다리고 계셨다. 시자는 큰스님을 깜박 잊고 도반을 따라가서 작설차를 마시며 한담설화(閑談說話)로 시간을 잊고 있었다.

 

약 한시간쯤 지난 뒤 시자는 해우소에 계신 큰스님 생각이 떠올라서 달려가 보니 큰스님은 선정에 드신채 바위덩이 처럼 계셨다. 성은시자는 큰스님을 업고 방으로 돌아온 뒤 가서 장삼을 입고 큰스님에게 오체투지 하여 삼배를 올리고 진심으로 참회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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