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82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통 도 사 시 절(通 度 寺 詩 節)…〈3〉


 

동짓날 그믐날은 선방에서 반산림날이라 하여 대중스님이 하루를 쉰다.


사시에 조실스님의 법문을 듣고 점심공양은 종무소의 배려로 찰밥과 두부공양을 받았다. 선방에서 대중공양하면 의례히 찰밥과 두부공양이 최고의 인기가 있다.


사시에 조실스님께서 선방에 차린 법상에 높이 앉으셔서 법문을 하시게 되었다.


“오늘은 반산림날이라 구순안거(九旬安居)의 절반이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공부한 것을 바탕삼아 대중스님은 내게 질문을 하시오. 내 일일이 답하리라.”


맨 먼저 대흥(大興)수좌가 여쭌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닛고?”


“막망상(莫妄想).”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역국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는 질문에 조실스님은 ‘망상하지 말라’하신 것이다. 이번에는 입승(立繩)스님이 여쭙는다.


“여하시조실화상가풍(如何是祖室和尙家風)이닛고?”


“막망상(莫妄想).”


전 대중이 여러 가지를 질문했는데 조실스님의 대답은 ‘막망상’으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구하노스님이 한 말씀하신다.


“막망상(莫妄想)의 본의(本意)는 무엇입니까?”


“큰스님.”


“예.”


“어떤 것이 큰스님의 가풍(家風)입니까?”


“설리매화처처개(雪裡梅花處處開)지요.”


“장하십니다.”


이때 대흥(大興)수좌가 아마 열 번째의 질문을 던진다.


“막망상 막망상 하시지 말고 조실스님의 진짜 살림살이를 화반탁출(和盤托出)하여 보여 주십시요.”


“막망상(莫妄想).”


조실스님의 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서 외치기를,


“그런 조실은 나도 하겠소. 대답할 말이 없으면 법상에서 내려오실 일이지 갖가지 질문에 죄다 막망상이니 당키나한 일입니까?”


“막망상 하시게.”


“또 막망상 입니까? 조실스님께서 소승한테 물으십시요. 제가 답하겠습니다.”


이에 조실스님이 미소를 머금으시며,


“대흥, 대흥은 어디 있는가?”


“막망상 하시요.”


대중이 일제히 웃는다. 이에 조실스님이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한번 울리시고,


莫妄想莫妄想兮여

春來依舊好時節이로다


망상하지 말라 망상하지 말라여

봄이 옴이 예전처럼 좋은 시절이로다


조실스님들은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울리시고 문득 내려 오셨다. 이후 조실스님의 막망상(莫妄想)법문은 각 선원에 널리 번져서 선객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여러 해 하였다.


구하노스님이 자신의 가풍을 묻자 ‘눈 속에 매화가 곳곳마다 피었도다’고 답하시자 조실스님은 ‘장하십니다’하였는데 이 뜻은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영어오색(暎於五色)을 일반적으로 ‘오색에 비추어’로 새기는데 반해 대흥ㆍ덕현 두 수좌는 ‘오색을 비추어’로 새기고 자기네가 옳다고 소란 피우더니 몇 년 뒤 스스로 환속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면밀히 추심해 보면 불경을 잘못 해석한 과보로 환속한 것이 아닌가 싶어 정신이 바짝 든다.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가 7백여대중을 거느리고 계시었다. 법회 때마다 수염이 허연 노인 한 사람이 말석(末席)에 참여하여 법문을 듣곤 하는 것이었다. 이를 눈여겨 보신 방장화상은 하루는 법회를 마치고 염화실(拈花室)로 돌아가는데 그 노인이 방장화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노인을 데리고 염화실에 들어오자 그 노인은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예배를 올리고는,


“저는 예전히 이 산중을 다스리던 전백장(前百丈)이올씨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인이 묻기를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맙니까?’라고 하기에 제가 ‘불락인과(不落因果)니라’라고 답하였사온데 이 일구불법(一句佛法)을 잘못 일러준 과보로 오백생(五百生)을 야호신(野狐身)을 받아왔습니다. 큰스님의 법문을 익히 들어왔사온데 큰스님께서 능히 이 야호신을 벗게 해 주실 선지식으로 믿음이 가오니 원하옵건데 이 몸을 제도해 주옵소서.”


“그럼 물으시오.”


그 노인은 일어나 다시 큰절을 올리고 여쭙기를,


“대수행인(大修行人)도 도리어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맙니까?”


방장화상은 지체 없이 단호한 어조로,


“불매인과(不昧因果)니라.”


고 답하시었다. 인과에 떨어집니까 맙니까의 물음에 인과에 어두워지지 않는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이에 그 노인은,


“아 예~”


하고 단박에 깨치고는 다시 큰절을 올려 사례하고,


“저의 시체를 법당 뒤 일마장 기량 올라가서 큰 바위 밑에 남겨둘 것이오니 도반의 예로 다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공양 끝에 방장화상은 대중을 향해 이르시기를,


“오늘은 다비를 치룰 것이니 소홀함 없이 준비하여 법당 앞에 모이도록 하라.”


난데없는 말씀에 대중이 의아해 하면서도 명령대로 운집했는데 방장화상이 앞장서서 뒷산으로 올라갔다. 일마장 가량 갔을 때 큰 바위 아래에 과연 흰색 여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여법하게 다비를 치른 뒤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법상에 올라 말석에 앉아 법문을 듣던 노인의 정체에 대해 주욱 설명해 주시고 이르시기를,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일구불법(一句佛法)을 잘못 일러준 과보로 오백생을 야호신(野狐身)을 받았으니 이 아니 두려운가? 또 불매인과(不昧因果)라는 일구불법을 듣고 곧 깨쳐서 야호신을 벗었으니 불법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실감하지 않겠는가?”


불락(不落)과 불매(不昧)는 떨어지지 않는다와 어두워지지 않는다의 낙(落)과 매(昧)의 한글자 차이로 야호신을 받고 또 야호신을 벗었으니 일구(一句)의 불법이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영어오색(暎於五色)의 오색에 비추어와 오색을 비추어의 에와 을의 한글 자 차이로 대흥수좌와 덕현수좌의 운명이 바뀌었으니 불법의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아무튼 삼동구순안거(三冬九旬安居)를 잘 정진하고 해제일이 되었다. 선원에서는 한달에 두 번씩 포살(布薩)이라 하여 법문을 계율이나 선법문을 설하기도 하고 열흘에 한번씩 법문을 설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곡조실은 보름에 한번씩 설하게 되는 법문을 사양하시고 결제 해제일만 법문을 하기로 했으며 중간의 포살은 운허강백(耘虛講伯)과 자운율사(慈雲律師)가 번갈아 가며 법문을 했다. 그런데 해제일은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도 신평리에서 신도들이 다수 올라와서 법당안을 입추(立錐)의 여지없이 꽉 메웠다. 조실스님은 조용히 말씀을 시작하신다.


“오늘은 해제일입니다. 구순안거를 정진해 온 대중은 참으로 해제를 했습니까? 오늘 해제일에 대중은 어디로 어떻게 떠나렵니까? 문밖에 풀이 만장(萬丈)이나 돋았는데 대중은 풀을 밣지 않고 어떻게 나가겠소이까?”


바로 이 때 입승(立繩)인 경운(耕雲)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실스님에게 삼배를 올리고 아뢰기를,


“문 안의 조실스님 머리 위에 풀이 만장(萬丈)이나 돋았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조실스님은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시고 이르시기를,


“경운스님은 앞으로 수좌들을 많이 거느리겠소이다.” 하시고 송(頌)하시기를,

雜草萬丈深하니 四顧無通路라

回頭看靑山하니 嶺上片片雲이니라


잡초가 만길이나 깊으니

사방을 돌아봐도 통로가 없구나

머리 돌이켜 청산을 보라

고개 위에 조각조각 구름일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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