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74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가 야 총 림 (伽 倻 叢 林)〈2〉


 기적(奇蹟)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우리네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기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를테면 우리 인간이 약 2백근 정도의 무게를 들어 올리면 그 사람은 힘이 장사라고 칭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천근이나 되는 바위덩이를 훌쩍 들어 올렸다면 뭐라 하는가? '기적적(奇蹟的)'이라는 표현을 쓸 것이다. 우리네 상식을 초월한 일들을 기적이라고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야총림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헌식(獻食)소임의 노장님이 해제하고 떠나자 기도법사이자 선덕이신 인곡스님이 헌식 소임을 자청하여 점심공양 끝에 대중이 한술씩 떠서 모은 헌식밥을 헌식돌 위에 쏟는 순간 까막까치들이 몰려 와서 밥을 쪼아 먹는다.


 헌식하러 헌식돌 곁에 선 인곡스님이 헌식그릇을 반석 위에 놓고 진언을 외우는 동안 까막까치 떼는 헌식돌 위에 앉거나 인곡스님의 어깨와 머리 위에 앉아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진언을 다 외우고 밥그릇을 헌식돌 위에 붓자마자 까막까치는 서로 먼저 쪼아 먹으려고 아우성을 치며 서로 떠밀면서 경쟁을 한다. 인곡스님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윽고 몸을 돌려 선원으로 돌아오는데 까막까치 떼는 저들끼리 밥 다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맨 처음 목격한 사람은 노전스님이었다.


 "아니?저게?저게?…"


 까마귀 너댓 마리가 인곡스님의 머리와 어깨에 앉아 스님의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기고 있지 않는가? 이 기적의 소문은 이내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이튿날 낮 헌식하는 장면을 많은 스님들이 멀리서 지켜보았다.


 옛날 남양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에게 한 학인이 여쭙기를, 


"산에서 범을 만나면 어떻게 용심(用心)하오리까?"


"내가 저에 무심(無心)하면 저도 내게 무심할 것이니라?"


 경계에 당해서 내가 무심하면 경계도 내게 무심하리라는 말씀이다. 인곡스님은 지난겨울 용맹기도를 드리는 사이 무심(無心)의 경지의 도달한 것은 아닐까? 아니 지난겨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 무심경(無心境)을 증득한 초탈자(超脫者)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정해년(丁亥年) 봄, 무심도인(無心道人)의 진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얼마 안가 전국에 쫙 퍼지게 되었다.


 일이 이쯤 되니 인곡도인을 친견하려는 사부대중이 자꾸만 몰려와서 시봉 드리는 시자사미(侍者沙彌)는 연일 손님을 접대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러나 본인이신 인곡스님은 아무렇지 않게 기도정진에 잠시도 쉬지 않았다.


"인곡도인을 뵈려거든 장경각을 가소."


 이것이 대중스님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듯 인곡스님은 장경각에서 목탁을 울리는 모습을 뵙는 것이 손쉬운 일이었다.


"기도하셔서 가피(加被)를 입으셨다, 기도하시다가 크게 깨치신 것이다."


 이러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가야산이 날마다 들썩이는 것이었다.


 방장스님도 공양 끝에 대중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해치는 마음은 머리 하면 뜨락에 사슴떼가 와서 노닐게 되고 탐심을 버림에 밤에 금은(金銀)이 번쩍임을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 못하는 축생이지만 무심도인을 따르는 안목이 있는데 우리 인간들은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뽑낼 수 있을 것인가? 인곡스님의 정진력을 본받아 더욱 분발하여 정진하기 바라노라."


 정해년(丁亥年) 하안거 중에 방장 큰스님이 서울에 잠시 가시게 되었다. 큰스님의 수행인은 맏상좌인 수련(秀蓮)스님이었다. 수련스님은 뒷날 구산당(九山堂)이라는 법호를 받았으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의 방장화상을 역임하게 된다.


 효봉방장(哮峰方丈)스님은 서울 안국동의 선학원(禪學院)에서 베푼 가사불사(袈沙佛事)에 증명법사로 추대를 받아 가셨던 것이다.


 가야총림에서는 반월(半月)마다 방장스님의 법문이 있어 왔는데 자리를 뜨시면서 유나(維那)와 입승(入繩)을 불러 보름날 법문은 인곡스님을 모시라고 분부해놓으셨으므로 인곡스님이 법상에 오르셨다. 청법게(淸法偈)가 끝나고 잠시 입정(入定)이 있는 뒤 인곡스님은 시자가 올린 찻잔을 들고 주욱 훑어 보신 다음 마침내 입을 여시기를,


"이 한잔의 차(茶)가 옛날 조주(趙州)스님의 차와 같은가? 다른가?"


 대적광전(大寂光殿)을 가득 메운 대중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인곡스님의 음성이 적요를 깨뜨린다.


"옛날 조주스님도 이 한잔의 차에 신명(身命)을 잃었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도 이 한 잔의 차에 모두 신명을 잃었나니 오늘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어떻게 해야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얻겠는가?"


 대중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는데 인곡스님은 양구(良久)한 후 사자후 하시길,


 於此趙州一椀茶여

 殺彿活祖總自在로다

 靑天白日閃電光하니

 山河大地磨爲塵이로다


 여기 조주스임의 한 주벌의 차여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살림이 모두 자유자재하구나

 푸른 하늘 밝은 날 번개 불빛 번쩍이니

 산하대지가 모두 갈려 티끌이 되도다.


 낭랑한 음성으로 힘차게 읊으신 다음 해석을 곁들이신 뒤 주장자(柱杖子)로 법상을 세 번 울리시고 문득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인곡스님은 평소 말씀을 많이 않는 성격이다. 스님의 법문 역시 그렇다.


 정해년 겨울철이 시작되는 시월보름날, 방장스님이 법좌에서 오르셔서 이르신다.


 한 학인이 여쭙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니 조주스님이 이르시기를 "없느니라"라 했다. 열반경(涅槃經)에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실유불성(悉有佛性)이라 하였거늘 어째서 조주스님은 개에 대해 불성이 없다고 답하셨는고?ꡓ


 법당안이 비좁도록 꽉 들어찬 사부대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묵연(黙然)한데 이때 대중 가운데서 문득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무(無)"


 무란 없단 뜻이다. 묵직한 음성으로 힘주어 대답한다.


 "아니다."


 방장스님의 말씀이다. 무란 대답을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하신 것이다.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스님은 어째서 없다고 하셨는고?"


 조실스님의 재차 물음이었다.


 "무"


 두 번째의 물음에도 그 스님은 힘주어 ‘무’라고 대답한다.


 "아니다."


 방장스님의 강한 어조의 부인(否認). 다시 묻는다.


 "일체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했거늘 조주스님은 어째서 없다고 하셨는고?"


 "무"


 세 번째의 대답도 역시 ‘무’였다. 이 때 방장스님은 세워 잡았던 주장자를 놓고 문득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결제법문(結制法門)치고는 매우 짧은 시간에 끝난 셈이지만 청법대중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게한 법문이다.


 ‘무’라고 대답한 스님은 과연 누구였을까? 바로 인곡스님이었다. 방장스님의 세 번 물음에 똑같이 무(無)라고 대답한 인곡스님.


 세번째 대답이 떨어지자 방장스님은 어째서 변하좌(便下座)하셨을까?


 본분납승(本分衲僧)이면 단박에 위의 문답에 대한 진의(眞意)를 알아낼 것이지만 화두 들고 참구해 나가는 도상(途上)에 있는 초참(初參)들에게는 어지간히 논란거리였던 모양이다.


 인곡스님의 법이 더 높으므로 방장스님이 시원한 대답도 못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느니 하며 설왕설래하는 것이지만 정작 참뜻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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