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69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해 방 기 (解 放 期) 〈4〉


  월명암(月明庵)은 소위 호남삼절(湖南三絶) 중 하나이다. 삼절이란 진산(珍山) 태고사(太古寺)의 일출(日出)과 월명암의 낙조(落照) 그리고 백암산 운문암(白岩山 雲門岩)의 조망(眺望)이 그것이다.


 태고사 상봉에서는 동해에 솟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육지 한복판에서 해돋이를 보기란 흔히 않은 장관(壯觀)이다.


 그리고 여기 월명암에서 보는 낙조는 가위 황홀경이다. 동해에 솟는 해돋이를 찬란함의 극치라고 한다면 서해에 자는 해를 굽어보는 것은 황홀함의 극치라 할만 하다. 해가 바다 속으로 몰입(沒入)하며 내뿜는 붉은 빛깔은 바다를 왼통 삼키는데, 그 황홀함을 무딘 붓끝으로 표현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 우리 인생도 숨 걷우기 직전에 이웃에게 황홀함을 선사해주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운문암의 조망은 찬란하지도 황홀하지도 않다. 그저 고요로움을 풍기고 편안함으로 우리에게 무등산(無等山)이 다가온다.


 일출과 낙조를 동적(動的)이라 한다면 조망은 정적(靜的)이라 하겠다.


 매곡(梅谷)스님과 인곡스님 얘기 하다가 빠뜨린 스님이 있다. 연령은 다소 떨어지지만 두 스님과 잘 어울리는 해안(海眼)스님이다.


 해안스님은 내소사(來蘇寺)스님으로서 일찍이 백양사(白羊寺)에서 인곡스님과 강원생활을 하면서 친사형처럼 따랐다. 인곡스님의 대교(大敎)를 이수할적에 강원에 들어와서 사집(四集)을 배웠으며 인곡스님이 중강(仲講)으로 있을 적에는 해안스님은 사교(四敎)를 보았다. 해안스님이 인곡스님에게 직접 수학하지는 않았지만 친사형님처럼 따랐으며 인곡스님도 해안스님의 총명함에 못내 감격하곤 했다.


 그 해안스님을 여기 월명암에서 실로 오랜만에 해후하였으니 인곡스님의 기쁨도 해안스님 못지 않았다.


 “여기서 큰스님을 뫼시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나도 그렇소 해안스님.”


 해안스님이 내소사 출신이니 마치 안방에서 인곡스님을 맞은 샘이다.


 “여기서 운문암이 그리 멀지는 않지만 찾아뵙지 못한 것은 순전히 저의 허물입니다. 너그러이 봐 주십시요.”


 “그거 무슨 말씀, 여기가 이렇게 좋은 도량인줄을 나는 미처 몰랐어요. 더욱이 매곡화상, 해안스님이 계시니 가위 금상첨화(錦上添花)구요.”


 해안스님은 학인시절부터 총기가 좋기로 소문난 유망주였다. 특히 한시(漢詩)에 취미도 있고 재능도 놀라웠다.


 해안스님이 열여덟살 때 백양사 강원에서 사교(四敎)를 보고 있었다. 당시 큰절 선원 조실(祖室)로는 학명(鶴鳴)선사가 계셨는데 하안거(夏安居) 결재법문을 이렇게 하셨다.


 “사방이 꽉 막힌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만났다 하자 날개가 없으니 공중으로 날을 수 없고 들어온 길이 너무도 험악한지라 뒤로 물러 설 수 없을때, 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여야만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법회가 끝난 뒤 강원으로 돌아오자 주지스님의 부름을 받았다.


 “봉수(鳳秀)야.”


 “예~”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을 잘 들었느냐?”


 “예~”


 “학인들은 조실스님의 물으신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네가 학인들에게 확실히 알도록 교수(敎授)해 주거라.”


 “저도 대답하지를 못했는데요.”


 “네가 대답하란 말이 아니고 조실스님이 물으신 내용을 설명하여 알도록 하란 말이다. 그래야만 학인들도 참구(參究)하게 될 터이니 말이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지스님이 분부하신 대로 학인들에게 의정(疑情)을 일으키도록 설명하고 나서 봉수 자신도 그 의문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하여 엿새 동안 잠을 잊고 참구하던 봉수는 새벽이 밝으면서 죽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와 소종(小鐘)소리, 그리고 바로 이어 울린 선방의 방선 죽비소리를 듣는 순간 크게 깨친 바 있었다. 그리하여 죽공양도 잊고 그대로 앉은 채 시공(時空)을 잊더니 문득 외치듯 송(頌)하기를,


 鐸鳴鍾落又竹篦 鳳飛銀山鐵壁外

 若人問我喜消息 會僧堂中滿鉢供


 목탁 울고 종소리 떨어지자 또 죽비소리 들리는데

 봉수는 은산철벽 밖으로 훨훨 날으도다

 만일 뉘 있어 내게 기쁜소식 묻는다면

 회승당 안에서 만발공양 한다 하리.


 봉수(鳳秀)는 해안스님의 법명이다.


 이 송(頌)을 적어 조실스님에게로 달려가서 드렸더니 이윽히 보시더니 벌떡 일어나서 발로 밟아 뭉개버리신다.


 “이 놈이 장차 하택신회(河澤神會)가 될까 겁난다.”


 하택신회는 육조(六祖)스님의 고제(高第)로서 14세 때 큰스님의 시자(侍者)로 있었는데 하루는 큰스님이 대중을 향해 설하시기를,


 “내게 한 물건〔一物〕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형상 보일 수도 없으며 밝기는 일월과 같고 검기는 칠(漆)과 같으며 위로는 하늘에 받치고 아래로는 땅에 비치었나니 이는 날로 사용하는데 있느니라. 대중이여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고?”


 이를 이른바 일물화(一物話)라 하는데 이에 14세의 시자(侍者) 신회(神會)가 일어서서 아뢰기를,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본원(本源)이요 신회의 불성(佛性)입니다.”

 라고 하니 이에 육조스님은 어성(語聲)을 높여,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보일 수도 없다 했거늘 너는 삼세제불의 본원이니네 불성이니 한단 말이냐? 만일 뒷날 네가 깨침을 얻는다 해도 너는 얼자(孽子)밖에 안 될 것이니라.”


 여기에서 신회는 총명한 알음알이를 가지고 이름 지을 수 없는데도 삼세제불의 본원이니 자신의 불성이니 하였으니 꾸중을 듣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뒷날 크게 깨쳤지만 지해종도(知解宗徒) 지해종사(知解宗師)니 하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지해(知解)는 곧 알음알이를 말한다. 자기의 총명한 의식작용(意識作用)으로 불법이 어떻느니 선(禪)은 이런 것이라느니 하고 헤아리는 것이 곧 지혜이다. 불법을 총명의식(聰明意識)으로 헤아리는 것은 사미외도(邪魔外道)짓이다.


 학명조실은 해안봉수(海眼鳳秀)에게 지혜종도(知慧宗徒)의 폐단을 일러 주시며 거듭거듭 당부하시곤 하셨다. 헌데 해안스님은 18세 때의 체험에서 이른바 ‘한소식’을 하여 마치 순풍에 돛을 단 듯 공부가 수월하게 잘 지어갈 수 있었다.


 선방으로 걸망을 옮긴 뒤에도 자주 학명선사를 찾아 뵈었으며 학명선사께서도 친제자 이상으로 사랑해 주셨다.

 Copyright (C)  2001. Daegak.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