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66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해 방 기 (解 放 期) 〈1〉


 운문선원(雲門禪院)에 주석하는 동안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도반(道伴)들이 찾아오는 일이었다.


 경진년(庚辰年) 하안거(夏安居)에는 전강(田岡)스님 · 고암(古庵)스님 · 묵담(黙潭)스님 등 중진급 구참(久參)들이 안거에 참여하는 20여명의 선객들의 환희심(歡喜心)을 만끽하면서 정진에 여일(如一)하였다.


 고암(古庵)스님은 용성(龍城)큰스님에게 입실(入室)하였으니 인곡조실과는 사형사제(師兄師弟)가 된다.


 인곡조실이 법랍이 위이므로 사형(師兄)이 되는데 멀리 금강산에서도 여러철을 함께 정진한 바 있어서 가장 친히 지내는 사형(師兄)이 되는데 멀리 금강산에서도 여러철을 함께 정진한 바 있어서 가장 친히 지내는 사형사제이다.


 고암(古庵)스님은 경기도 태생이고 어려서 출가하여, 줄곧 수선(修禪)에만 전념해 온 본분납자(本分衲子)의 한분이다.


 그리고 전강(田岡)스님은 만공선사(滿空禪師)의 제자로서 일찍이 22세에 자기면목(自己面目)을 철견(徹見)한 도인(道人) 스님이다.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에서 중이 되어 어른스님네 시봉하면서 강원(講院)에서 4집(四集)을 읽었는데 4집인 서장(書狀)과 선요(禪要)가 마음에 들어 낮에는 글을 읽고 밤에는 혼자서 장좌불와(長坐不臥)하여 만법귀일(萬法歸一)의 하두를 참구하는 것이었다.


 선요(禪要)라는 조사어록(祖師語錄)에는 고봉원묘(高峰原妙)선사의 체험담이 소상히 실려 있는데 영신(永信․전강스님의 법명)은 고봉선사의 공부하신 내용을 본받아 밤잠을 잊고 만법귀일(萬法歸一)이며 일귀하처(一歸何處)오? 하고 참구에 참구를 거듭하였다.


 화두를 참구한지 2년 뒤 4집을 모두 떼자 스님은 선방(禪房)으로 가서 화두와 사생결단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료들 몰래 걸망을 싸서 새벽 예불 끝에 태안사를 뒤로 하였다.


 태안사는 교통이 사납기로 유명하다.


 20여리를 걸어 나와서 섬진강(蟾津江)을 건너게 되는데 강을 건너는 다리는 징검다리를 이용한다.


 징검다리란 비교적 얕은 곳에 큼지막한 바위덩이를 놓아 그 위에 널판지나 긴 나무토막을 놓으면 징검다리가 된다.


 영신(永信)이 징검다리를 건너는 시각에 아침 햇살이 마악 비추이고 있었다.


 반쯤 건너던 영신은 맑고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강물을 굽어 본다.


 강물에는 머리 깎고 먹물옷 입은 보잘것 없는 자신의 그림자가 선명히 나타난다.


 (저게 나란 말이지?)


 맘 속으로 이렇게 뇌까리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에 사무치는 환희로움이 용솟음 치는 것이었다.


 그 찰라 영신은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한 것이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영신은 걸망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두어시간을 그 자리에 돌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영신은 그 길로 수덕사 정혜선원(修德寺 定慧禪院)에 계신 만공(滿空)선사를 찾아가서 법거량(法擧揚)을 통해 마침내 인가(印可)를 받았다.


 만공선사는 영신에게 ‘전강(田岡)’이라는 법호(法號)를 주시며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알았다 해도 그것을 꾸준히 보림(保任)하지 않으면 알음알이로 둔갑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알음알이(知解)란 일종의 간혜(乾慧)이니 총명한 의식(意識)으로 사량계교(思量計較)하는 것을 말한다.


 번뇌 망상이 완전히 사그러진 무심(無心)에서 우러나는 지혜(智慧)라야 생사(生死)의 굴레에서 벗어나 각자(覺者)가 되는 것인데 총명의식(聰明意識)으로 진여(眞如)를 헤아리는 지혜를 메마른 지혜(乾慧)라 한다.


 견성(見性)하고서도 깨친 경지를 잘 보호하고 임지(任持)하여야 한다.


 선가(禪家)의 견성이란 교가(敎家)에서는 해오(解悟)라 하며 보림(保任)의 과정을 거쳐 확철대오(廓徹大俉)한 것을 교가에서는 증오(證俉)라 한다.


 그래서 보림에 게을리 맡도록 만공선사께서 엄히 이르신 것이다.

 묵담(黙潭)스님은 백양사 스님으로 인곡조실의 후배이다.


 큰절 주지이신 만암(曼庵)큰스님의 비구계사(比丘戒師)이시며 사숙(師叔)이 되시는 금해노화상(錦海老和尙)의 손주시봉이 바로 묵담스님이다.


 금해노화상은 율행(律行)이 엄정(嚴淨)하고 수행을 철저히 하신 선지식(善知識)인데 묵담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노스님 시봉을 하며 그 어른의 사상을 고스란히 익힌 율사(律師)이자 석학(碩學)이다.


 백양사 출신으로는 만암큰스님 다음으로 선교율(禪敎律)을 고루 갖춘 스님을 꼽으라면 서슴치 않고 인곡조실(麟谷祖室)을 첫손에 꼽고 그 다음으로는 아마도 묵담(黙潭)스님을 지목할 것이다.


 묵담스님은 선(禪)만 철저히 갖추면 큰 그릇이 될 것이라는게 주위 노덕스님들의 한결같은 바램이지 평(評)이기도 하다.




 운문선원에 구참스님네가 많이 모이기로는 아마도 이번 철이 아닌가 싶다.


 이 중에 전강(田岡)스님은 고작 조사어록 몇권을 읽은 것이 학식에 있어 전재산(?)인데 말하는 솜씨는 일대시교(一大時敎)를 마친 석학(碩學)들을 단연 앞서고도 남는다.


 재담(才談)을 타고난듯, 아니면 언설복(言說福)을 전생에 톡톡히 지었는지 말솜씨가 뛰어나서 방선(放禪)만 하면 수좌들이 전강스님 곁으로 모인다.


 주로 조사어록(祖師語錄)을 읽다가 학문을 접었으니 인용하는 이야기는 선사(禪師)스님들의 입도기연(入道機緣)이나 선수행(禪修行)하며 있었던 일들인데 듣는 이로 하여금 끝까지 듣지 않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술을 지닌 스님이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싫지 않는 것이 큰스님들의 수행담(修行譚)인데 전강스님은 같은 내영이라도 감칠맛 있게 슬슬 풀어 나가니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이다.


 전강스님의 이러한 장점을 가장 적절히 써먹는 기회는 바로 대중 운력(運力)이다.


 운력은 시간이 길면 피로가 몰려오고 짜증도 나게 되는 것이 상례인데 전강스님의 이야기 보따리를 곁들이면 한 두시간은 훌쩍 가버리고 운력도 홀가분히 끝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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