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65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운 문 암 괘 석(雲 門 庵 掛 錫) 〈6〉


 옛 조사스님의 말씀에,


 得旨於心하면

 黃花翠竹이 無非妙諦로

 失旨於心하면

 千經萬論이 無非魔說이니라


 마음에 뜻을 얻으면

 노란꽃 푸른 대가

 묘제(妙諦) 아님이 없고

 마음에 뜻을 잃으면

 일천 경전 일만 논(論)이

 마군이 설(說) 아님이 없다.


 마음에 뜻을 얻는다는 것은 마음을 깨치는 것을 의미한다.


 묘제(妙諦)란 미묘난사의(微妙難思議)한 진리(眞理) ․ 이치(理致)를 말함이다.


 마음에 깨치고 보면 평소에 우리가 접하는 노란 꽃, 푸른 대나무 등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가 미묘하여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진리 아님이 없는 것이다.


 또 마음에 뜻을 잃어 무명업식(無明業識)을 등에 지고 다니면서 갖은 번뇌 망상을 반복하는 범부 중생일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인 경전이나 역대조사(歷代祖師)께서 설파하신 논지(論旨)등이 마군이 설(說)로 화(化)해 버리는 것이다.


 손칼을 보라. 어른이 가지면 물건을 자르는 데에 유용하게 쓰지만 두세살 어린 아이가 가지면 자기 손만 베게 된다. 어린아이는 아직 지각심(知覺心)이 덜 익어서 손칼의 사용법을 모르므로 결국 자기 손만 상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마음을 깨친 사람은 신통묘용(神通妙用)이 무궁무진한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이고 가장 높은 이고 가장 행복한 이다.


 이 마음은 허공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산중에 있는 것도 아니며 들판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바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임금님이 사는 왕궁이나 지체 높은 귀족의 집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마음은 개개인 자신에게 있다. 자신이 지니고 일생을 살아간다.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흔히 마음 찾는 이들이 자신이 아닌 남에게 있는 줄로 착각하는 수가 많다. 마음을 다른 말로 도(道)라고도 하고 진여(眞如)니 진리(眞理)니 하기도 하는데 이 도(道)라는 것이 자신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자기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한다.


 달마대사(達摩大師)는 이렇게 송(頌)했다.


 心心心難可尋

 寬時偏法界 窄也不容鋮

 我本求心不求佛 了知三界空無物

 若欲求佛但求心 只這心心心是佛

 我本求心心自持 求心不得持心知

 佛性不從心外得 心生便是罪生時


 마음 마음 마음이여 가히 찾기 어렵도다

 너그러울 때는 법계에 두루하고

 좁을 적에는 바늘도 용납치 않도다.

 내가 본래 구하는 마음으로 부처를 구하지 말지니

 삼계가 공하여 한 물건도 없는 줄을 요달해 알지어다.

 만일 부처를 구할진대 다만 구하려는 마음이니

 다만 이 마음 마음 마음이 곧 부처니라.

 내가 본래 구하려는 마음도 마음에 스스로 가졌으니

 구하려는 마음으로 마음 알기를 기대하지 말라.

 불성은 마음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니

 구하려는 마음이 생하면 문득 죄가 생하는 때니라.


 이 게송은 혈맥론(血脈論) 끝부분에 있는데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

 마음 심(心)자 씻을 새김에 있어 어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심(三世心)으로 보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마음 마음하는 마음이여’하고 새긴다. 또 어떤 이는 ‘마음을 마음이라 하는 마음이여’하고 새기는데 어떻게 새기든 간에 마음을 해석한다는 것은 모두 군더더기인 것이다.


 너그럽다 할라치면 온 우주 법계에 두루하고, 좁다 할라치면 바늘 끝도 용납지 않는 것을 어떻게 혀와 붓끝으로 표현한다 말인가? 내가 마음을 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부처를 구하지 말라 하신 것은 구하려는 마음 자체가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구하려고 먹은 마음, 즉 평상심(平常心)을 여의고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상심 그대로가 곧 부처라는 말씀이다.


 이 게송은 특히 선원(禪院)에 몸 담고 있는 선객(禪客)들 사이에는 너나없이 암송하고 있는 것이어서 선가(禪家)의 금과옥조(金科玉條)에 속한다. 인곡조실(麟谷祖室)은 방선(放禪)시간에 염화실(拈花室)에 찾아오는 수좌들에게 틈틈이 선문촬요(禪門撮要)를 강의해 오고 있는 중이다.


 선문촬요는 경허(鏡虛)선사가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 조실로 계실 적에 선사를 모시고 절일을 도맡고 있던 성월(惺月)스님의 간청을 받고 엮은 책이다. 역대 조사스님들의 법어(法語)에서 선수행(禪修行)하는 납자들에게 요긴한 것만을 뽑아서 엮은 선문(禪門)의 보전(寶典)이다.


 이 선문촬요는 모두 21장으로 짜여져 있으니 제1장은 과거칠불(過去七佛)이고 제2장은 33조사(祖師)이며 제3장은 달마대사(達摩大師)의 혈맥론(血脈論)인데 앞에서 소개한 계송은 혈맥론 끝부분에 있다.

 제4장은 관심론(觀心論), 제5장은 사행론(四行論), 제6장은 반야심경(般若心經), 제7장은 오성론(悟性論)으로서 위의 글을 모두 달마대사의 글이다.


 제8장은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이고 제9장은 황벽선사(黃蘗禪師)의 완릉록(宛陵錄)이며 제10장은 황벽선사의 전심법요(傳心法要)이다.


 제11장은 법어(法語)로서 참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모았으며 제12장은 선경어(禪警語)는 박산무이(博山無異)선사의 설(說)이다.


 제13장에서 17장까지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저술이나 제13장은 수심결(修心訣), 제14장은 진심직설(眞心直說), 제15장은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제16장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제17장은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이다.


 제18장은 진정천책(眞靜天頙)선사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이고 제19장도 진정선사의 저술로서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이 수록되어 있다.


 제20장은 청허휴정(淸虛休靜)선사의 선교석(禪敎釋)이니 끝부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선사의 자성진불게(自性眞佛偈)를 싣고 있어 이채를 띤다.


 마지막 제21장은 오종가풍(五宗家風)이니 이는 환성지안(喚醒志安)선사의 오종강요(五宗綱要)이다.


 마지막으로 신심명(信心銘)과 증도가(證道歌)를 부록(附錄)으로 실었는데 신심명은 삼조승찬(三祖僧燦)선사의 저술이고 증도가는 육조(六朝) 문하(門下)의 영가진각(永嘉眞覺)선사의 저술이다.


 이상으로 선문촬요의 내용을 제목만 소개하였거니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주옥같은 백미(白眉)여서 경허선사의 후학(後學)을 위하신 정성과 안목을 이내 짐작하였다. 인곡조실의 스승이신 용성선사(龍城禪師)도 선문촬요를 요약발췌하여 번역본을 발간하였다.


 인곡조실은 수좌들에게 선문촬요를 강의하면서 강조하기를,

 “전문강원(專門講院)에서 이력을 마치고 선방으로 나올 적에 이 선문촬요 한 질만 걸망에 챙긴다면 그만이지. 이 책 속에는 초학(初學)선객의 길잡이로부터 구참납자(久參衲子)의 안목을 열어 주는 주옥같은 글로 가득 차 있거든.”


 한 선객이 묻는다.

 “조실스님께서 선문촬요의 많은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어느 글입니까?”


 “글세 워낙 책을 멀리해온 터라서 따로 좋아하는 글을 아직 없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백미(白眉)인 줄만 알뿐이라네.”


 본시 과묵한 조실인지라 더는 자신의 심경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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