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62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운 문 암 괘 석(雲 門 庵 掛 錫) 〈3〉


 

옛날 한 선비가 벼슬을 내놓고 깊은 산중에 파묻혀 곡식과 채소를 가꾸며 살고 있었다.


 함께 수학하여 벼슬길에 있는 친구들이 산중처사(山中處士)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시 세속으로 나오기를 권했다.


 “친구여, 산중에 무엇이 있길래 세속을 등졌던 말인가? 함께 수학할 적에는 함께 등제(登第)하여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자고 해놓고서 자네는 어이 산중처사가 되었단 말인가? 이 글을 받는 즉시 어서 황도(皇都)로 돌아와 나라를 위해 진충보국(盡忠報國) 하세나.”


 편지를 받아본 산중처사는 짤막한 시(詩) 한 수를 지어 보냈다.

 

 山中何所有오

 嶺上多白雲이로다

 只可自怡悅이언정

 佛堪持贈君이로다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고개 위에 흰구름만 많네 그려

 다만 내 스스로 기뻐할지언정

 그대에 가져 주지 못하겠네


 황도에서 벼슬하고 사는 친구가 산중에 무엇이 있길래 집착하여 나오지 않느냐고 편지에 물은 것을 고개 마루에 흰구름만 많이 오락가락할 뿐이라고 답한 것이다. 그리고 이 대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이 재미를 나 혼자서 즐길 뿐, 자네같은 세속에 찌든 친구에게는 가져 다 줄 수가 없네 그려 하고 도리어 세속의 친구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세속을 등지고 산중에 묻혀 살고 있는 극소수의 인물을 소개한 것이나 산중에서 수선생활(修禪生活)을 평생토록 해나가고 있는 선객들은 모두가 물외한인(物外閑人)이요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잠자는 무사대장부(無事大丈夫)들인 것이다.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밤과 낮으로 눕지 않고 땅 속에 박힌 말뚝처럼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십년을 넘게 정진하고 있는 인곡당(麟谷堂)은 도대체가 무슨 체질(體質)을 타고 났으며 공부의 깊이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만공조실(滿空祖室)이 정혜선원(定慧禪院)에서 법문을 하시기 위해 법상(法床)에 막 오르셔서 입정(入定)후 입을 여시려는데 좌중에 앉아 있던 선객이 큰 소리를 외치기를,


 “착(錯)이요” 했다.


 이에 조실스님은 아무 말씀이 없이 법좌에서 내려 오셨다.


 ‘착이요’란 ‘틀렸소’이다. 뭐가 틀렸단 말인가. 선(禪)은 언어 이전의 소식인데 이를 설파하려고 법상에 올라 입을 여시려 하니 이것이 틀렸단 말인 것이다. 개구이전(開口以前)의 소식을 만일 입을 열면 벌써 선(禪)이 아니다.


 조실스님은 ‘틀렸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들자 ‘오냐 네 말이 맞다’하고 수긍하신 것이다.


 이 ‘틀렸소’하고 외친 선객은 누구인가? 바로 ‘바윗덩이 수좌’, ‘말뚝 수좌’라 지칭하는 인곡당 그였던 것이다.


 인곡당은 시불산에서 두 철을 나고 멀리 남방에 있는 금정산(金井山)으로 내려 왔다.


 옛날은 군막사찰(軍幕寺刹)로 국방(國防)의 소임을 다했던 범어사(梵魚寺)가 성월(惺月)주지스님의 원력으로 일약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으로 그 격을 높인 도량인지라 수선(修禪)의 분위기가 잘 이뤄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인곡당은 금어선원(金魚禪院)에 방부를 드렸다.


 이 무렵 이 절 출신인 동산사형(東山師兄)은 공교롭게도 해인사(海印寺) 조실(祖室)로 계셔서 서로 만나지 못했다.


 정묘년(서기 1927년)에 이곳 금어선원에서 안거 중에 개울에 내려가 목욕하고 돌아오던 길에 마침 대숲을 지나는데 바람이 불자 대숲끼리 서로 부딪치며 미묘한 화음(和音)을 내자 이 소리를 듣던 동산스님은 문득 크게 깨치니 그 감회를 읊기를,


 畵來畵去幾多年

 筆頭落處活猫兒

 盡日窓前滿面睡

 夜來依舊捉老鼠


 그려 오고 그려 가기를 몇 년이나 했던가

 붓끝 떨어진 곳에서 산 고양이가 튀어 나왔네

 종일토록 창문 앞에서 얼굴 가득히 조을더니

 밤이 오매 예전처럼 늙은 쥐를 잡누나


 범어사는 각 암자마다 선원(禪院)을 개설하여, 2,30명씩 안거하면서 뼈를 깎는 정진으로 밤과 낮을 잊어오고 있었다.


 성월선사(星月禪師)라는 탈속도인(脫俗道人)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각방(各房) 문중별로 각살림 하던 전답을 통합하니․범어사에 들어오는 총수입이 무려 5천석이나 되었다.


 선사(先師)스님네가 문중끼리 재산 모으기에 힘써 이렇게 많은 재산(주로토지)을 갖게 되었으나 실제로 얼마인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은사스님은 슬하에 상좌를 두려면 상좌에게 물려줄 재산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했다. 아무리 훌륭하고 수행 잘한 스님일지라도 상좌나 제자를 둠에․있어서는 물려줄 전답(田畓)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스님이고 간에 재산을 취득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에 속했으며 재산을 모으는 방법은 각양각생이었다.


 예컨대 사찰에서 보편적으로 시행한 방법 중 하나는 누룩장사였다.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누룩의 원료인 밀기울을 사다가 절에서 누룩을 빚었다. 빚은 누룩을 잘 발효시켜 5일장에 내다가 팔면 다소간의 이윤이 떨어진다. 이 이윤을 같은 방법으로 연속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상당한 금액이 생기니 그것을 문중의 어른스님이 잘 보관하고 있다가 전답을 사는 것이다.


 일단 전답이 생기면 그 전답을 경작하는 사람(농부)이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일정한 경작료를 곡식으로 가져온다.


 이 곡식으로 자기 문중끼리 선량(禪糧)을 충당하고 남는 곡식은 다시 내어 농부들에게 장리(長利)를 놓았다. 장리란 봄에 쌀 한가마를 가져가면 가을에 반가마의 이자를 보태어 한가마 반을 가져 온다.


 당시 스님들의 재산 불리가 방법은 대략 이 두 가지가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한다. 이 외에도 쌀이나 보리․참깨․들깨․콩 등 수확한 곡물을 내다가 파는 예도 허다했지만 누룩장사와 장리 놓기보다는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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