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60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운 문 암 괘 석(雲 門 庵 掛 錫) 〈1〉


천산(天山)의 눈(雪)을 밟으며 제방선원(諸方禪院)을 전전하면서 오직 화두(話頭) 하나만을 지닌 채 세월을 잊어 온 인곡당(仁谷堂)은 서울 봉익동(鳳瀷洞) 대각사(大覺寺)의 스승님을 뵈러 갔다.


 스승님이신 용성(龍城)큰스님은 요즘들어 역경사업(譯經事業)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계셨다. 국민계몽운동(國民啓蒙運動)에 앞장서온 큰스님은 불전(佛典)을 우리글로 번역하여 일반 서민층에게 보급함으로써 국민의 정신을 깨우치는 것이 독립운동의 지름길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낡은 유교식(儒敎式)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에서 깨어나서 날로 달라져 가고 있는 현실사회에 적응하자면 잠자리에서 뛰쳐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갖고 계셨다.


 우리 선조들은 과거 수천년을 내려오며 종교적인 생활에 익숙해있다. 불교 이전에는 소위 국선도(國仙道) 또는 풍류도(風流道)라 불리는 우리 고유의 종교가 있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고지선(至高至善)한 경지를 선조들은 신선(神仙)이라 불렀으며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심신(心身)을 수련해야 한다.


 심신수련의 기본은 무상(無想)․무념(無念)․무욕(無欲)․무구(無垢)를 완성하는 것이다.

 잡된 상념을 끊고 마음 속의 온갖 욕심을 씻어내며 몸의 때를 제거하여 정력(精力)을 길러 단련하면 가히 신선의 경지에 이른다. 신선이 되면 몸을 자유로이 구사하여 하루에 수백리 길을 손쉽게 왕래함은 물론이고 수백세 내지 수천세를 살게 된다.


 이 장생술(長生術)은 얼핏 보아 별것 아닌성 싶지만 인간 수명이 백세 미만인 것이 상식인데 수백세 수천세를 살아가는 신선이야 말로 범상한 사람들의 외경(畏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분들은 세속의 부귀영화나 권세 따위는 아예 맘속에 둔 적조차 없고 오직 청정무욕(淸定無欲)의 초탈자(超脫者)로서 물외신선(物外神仙)인 것이다.


 이 신선의 경지를 목표를 하여 수련하는 국선도(國仙道) 도인(道人)을 조상으로 하여 태어난 배달민족(倍達民族)은 원래가 욕심이 없고 마음이 청정한 특징을 지녀왔다. 외세의 침입에 의해 갖은 시달림을 받아 왔으면서도 우리 민족은 이웃나라를 먼저 침공한 적이 없었다.


 우리 민족의 바탕이 무욕(無欲) ․ 청정(淸淨)이기 때문에 오랜 관습에 젖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전(佛典)을 통해 깨어나게 해 준다면 나라를 되찾는 것이 시간문제요 더 나아가서 세계를 이끌어 가는 선진국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굳은 신념으로 용성큰스님은 한문으로 된 불전을 한글화하는 작업에 혼신의 노력을 쏟고 계셨다.


 역경사업에 수반하는 작업이 곧 포교(布敎)이다. 불전을 번역 출간하면 이를 갖고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서 포교해야 한다. 가르침을 펴는 작업이 수반되어야만 불전을 한글화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용성큰스님은 제자들에게 포교사가 되기를 적극 권유하신다. 강원이나 학교에서 이수한 지식을 포교사업에 활용함으로써 불교 중흥과 함께 국민계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역경과 포교, 이 두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전심전력하고 계신 용성큰스님을 찾아 뵌 사람은 누더기 한 벌로 선방으로만 찾아다니는 거지나 다름없는 형색의 인곡당이었다.


 인사를 받으면 아래 위를 찬찬히 뜯어보신 큰스님은,


 “자네는 내 문하(門下)의 기린아(麒麟兒)로다”


 “․․․․․”


 “인곡선사.”


 “예?”


 엉겁결에 대답하고 나서 자기더러 선사라는 칭호를 붙인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란다.


 "어질 인(仁)자를 기린 린(麟)자로 고치도록 하지.“


 “예?”


 또 한번 놀라는 인곡당.


 “어질 인자가 나쁘지는 않지만 좀 박력이 없어 보이기에 오래 전부터 바꿔주기로 맘먹고 있었지. 자네는 이 용성문하(龍城門下)의 기린아(麒麟兒)일세.”


 박력이 부족하니 좀 더 과감하게 처신하라시는 가르침임을 인곡당은 모를리 없지만 기린 린(麟)자로 바꾸는 것에 한마디 해 두고 싶어진 인곡당.


 “사자나 호랑이에 비해 기린은 무력한 존재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기린은 동물 중에 신사로 통하거든, 기린처럼 멋있는 신사는 없을게야.”


 “스님이 주신 이름이니 그렇게 고쳐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때가 인곡당(麟谷堂)의 나이 40세 되던 해이다.


 인곡당은 조금은 궁금한 것이 없지 않았다.


 “내가 기린아라면 사자나 호랑이에 해당하는 형제는 누구일까․․․? 동산사형(東山師兄)이 경인생(庚寅生)이니 호랑이는 동산사형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자급(獅子級) 사형은?”


 아무래도 맏사형인 선파(仙坡)나 대하(大何) 두 사형님 중 한 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수행인으로서 꼭 스승님이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지만 스승님이 인정하리만큼 정진을 잘 해야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제자를 지켜보는 스승님의 안목이 제자보다 몇 수 위일 테니까 제자는 스승님이 기대하는 만큼 공부를 열심히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인곡당은 기린 린(麟)자로 법호를 바꾼 뒤 곧바로 선산 도리사(善山 桃李寺)의 태조선원(太祖禪院)으로 내려가서 방부를 드렸다.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하러 온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을 관군이 체포하려하자 피신하여 절 아래 동리에 사는 모례(毛禮) 집에 숨어 지냈다. 낮에는 땅굴 속에 몸을 감추고 밤에는 방으로 나와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불법을 심어 주니 이 신도들이 뒷날 도리사를 창건하였다.


 도리사는 신라에 세워진 최초의 절이며 아도화상이 산 위에서 북쪽을바라보면 김천땅 황악산(黃岳山)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에 가람을 지으면 자손만대토록 많은 고승이 날 것이니라.”


 했는데 뒷날 가람을 짓고 직지사(直指寺)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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